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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1편) : 신성한 산과 검은 성모, 몬세라트에서 만난 카탈루냐의 영혼

by 주식충전소 2024. 10. 29.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몬세라트로 가는 길은 이국적 경치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간판과 고가도로 그리고 아열대 나무들, 이러한 풍경은 제주도에 갔을 때의 느낌과 사뭇 비슷했다. 실망감을 안고 바르셀로나에서 한 시간 거리의 몬세라트로 향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스페인이지만 우리가 가는 날은 하늘이 흐리고 금방이라도 비가 퍼부을 것 만 같았습니다. 결국 몬세라트 수도원에 도착하자 천둥번개를 동반한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수도원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페인 몬세라트는 수세기 동안 자연과 신앙이 만들어낸 독특한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스페인과 카탈루냐 문화가 공존하는 명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몬세라트의 이름은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웅장한 톱니모양의 산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이곳이 스페인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몬세라트 수도원으로 올라가면서 다시 한번 몬세라트 산의 신비로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몬세라트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신성시되어 온 곳으로 기독교 초기부터 수도원 순례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11세기경 이곳에 몬세라트 수도원이 세워졌고 중세 시대 동안 수도원은 카탈루냐 종교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검은 성모 마리아상(La Moreneta)

몬세라트 수도원이 세워지게 된 계기는 검은 성모 마리아상(La Moreneta)의 발견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검은 성모 마리아상은 9세기경에 발견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전설에 따르면 880년경 소년 목동들이 몬세라트 산의 동굴 속에서 이 성모상을 발견했고 성모상에서 신비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고 합니다. 수도원에서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성모상을 수도원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성모상이 마치 거부하는 듯 너무 무거워져서 옮길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모 마리아가 이곳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신의 계시로 여겨 그곳에 수도원을 세운 것이 몬세라트 수도원입니다. 검은 성모 마리아상의 정확한 제작자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로마네스크 예술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보아 12세기 중세 조각가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합니다. 일부 기록은 성모상이 기독교 초기인 8~9세기에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지만 수도원에서 공식적으로 보유한 자료에 따르면 12세기 제작설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검은 성모상

 

 

몬세라트 수도원 역사

몬세라트 수도원은 해발 약 720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몬세라트 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025년 카탈루냐의 중요한 종교 지도자 리폴(Ripoll) 수도원이 수장이었던 올리바(Oliba) 수도원장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건축 양식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결합한 스타일로 수도원의 발전과 함께 후기에 르네상스와 바로크 요소도 포함돼 있습니다. 성당과 주요 건물은 고딕 스타일의 고풍스러운 구조를 보여주며 내부 장식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세부 조각이 돋보입니다. 이러한 다채로운 건축 양식은 수도원이 여러 세기에 걸쳐 건축과 개축을 거친 결과로 스페인 역사와 예술의 변천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수도원의 건축 비용은 카탈루냐 왕족과 귀족들의 후원을 통해 조달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중세 시기에는 왕실과 귀족들이 이곳의 신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많은 자금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순례자와 관광객의 방문을 통해 지속적인 기부와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몬세라트 수도원에는 약 70여 명의 베네딕토회 수도사가 거주하고 있으며 정기적인 기도와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수도사들은 이곳에서 수도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사 시간은 매일 오전 11시에 맞춰 수도원 내 성당을 방문하면 됩니다. 미사는 순례자와 관광객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사전예약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여하고자 모이기 때문에 미사 시작 30분 전에 도착해 자리를 잡는 것이 좋습니다. 수도원의 성가대인 에스콜라니아 합창단의 공연은 미사 중에 포함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그들의 성가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에스콜라니아 합창단

1307년에 기록된 몬세라트 수도원과 관련된 역사 문서에 따르면 에스콜라니아 합창단은 13세기에 설립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소년 합창단 중 하나로 700년이 넘는 역사를 통해 카탈루냐 지역의 종교적, 문화적 유산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구성원은 주로 카탈루냐와 인근 지역 출신의 9~14세 소년 약 50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몬세라트 수도원 내부

수도원 주변 건물에서는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후드티가 색깔도 예쁘고 가격도 마음에 들었지만 아내에게 쓸데없는 거 사 왔다고 혼날까 봐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면 그때 샀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활이 좀 더 여유로워지면 가족과 함께 가서 꼭 후드티를 사고 싶습니다.  비가 거세게 내려 마음 편하게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도 남지만 산 위에서 바라보는 장엄하고 웅장한 경관과 엄숙하고 정갈한 수도원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